[국회의정저널] 지난 8월 어느 오후, 한 영화관 앞에서 중·장년 서너 명이 어색한 듯 반가운 듯 손을 흔들며 모였다.
복지관 담당자도, 정해진 프로그램 매뉴얼도 없었다.
참여자들끼리 직접 날짜를 맞추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모인 자리였다.
“혼자서는 영화관에 들어가는 게 참 망설여졌거든요. 그런데 같이 보자고 하니까 발걸음이 가벼워지더라고요.”한 참여자의 작은 고백에서 시작된 모임이었다.
이들을 다시 영화관 앞으로 불러낸 건, 몇 달 전 복지관에서 처음 마주쳤던 이웃들이다.
서울 동대문구와 장안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좋은이웃, 동대문구 씽글벙글 사회참여단 ‘이웃 로그’’는 청년·중장년 1인가구의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사업이다.
지난 6월 오리엔테이션 이후 9월 말까지 청년 5회, 중·장년 10회 등 총 15회의 자조모임이 이어졌다.
사업의 핵심은 ‘위기 이후 지원’ 이 아닌 ‘일상 속 관계 맺기’. 그래서 활동도 참여자들이 직접 제안한 관심사에서 출발했다.
청년들은 보드게임 테이블에 둘러앉아 전략을 짜고 암벽을 오르며 서로의 손을 잡아줬다.
볼링핀을 쓰러뜨리며 환호했고 활시위와 방아쇠 앞에서 숨을 골랐다.
중·장년들은 경동시장 골목을 함께 걸으며 제철 재료를 눈에 담고 박물관 전시 앞에서 저마다의 기억을 꺼냈다.
원목을 다듬어 도마와 생활용품을 만들었고 찻잎을 블렌딩하며 향을 맡았다.
관계는 모임 시간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길 찾기를 어려워하는 이웃을 위해 누군가는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갔다.
폭염에 모임을 빠진 이웃에겐 “오늘 안 보여서 걱정됐다”는 안부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8월 중간평가회에 모인 참여자들의 소감에는 이런 변화가 또렷이 담겼다.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져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나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게, 참 오랜만이에요.”관계의 반경은 다시 한번 넓어졌다.
추석을 앞두고 ‘이웃 로그’ 참여자들이 복지관 내 다른 주민모임인 ‘신호등’, ‘오병이어’ 와 손을 맞잡고 연합 요리 활동을 펼쳤다.
‘이웃 로그’팀이 맡은 메뉴는 감자전.
자신들의 몫을 끝낸 뒤에는 옆 테이블로 넘어가 녹두를 갈고 애호박을 썰며 다른 모임의 일손을 거들었다.
완성된 전은 평소 안부 확인이 필요하거나 식생활 지원이 필요한 지역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몇 달 전만 해도 ‘혼자 밥 먹는 사람’ 이었던 이들이, 이제 ‘이웃의 밥상을 챙기는 사람’ 이 된 것이다.
장안종합사회복지관 관계자는 “1인가구의 고립은 함께 밥을 먹거나 일상을 나눌 사람이 없는 작은 빈자리에서 시작되기도 한다”며 “참여자들이 서로의 안부를 살피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에 나눔을 실천하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최동민 동대문구청장은 “이웃과의 작은 만남이 서로의 안부를 살피고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나누는 실천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웃 로그’ 사업의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도 1인가구가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어울리며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촘촘한 복지안전망과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동대문구는 앞으로도 지역 복지기관과 협력해 1인가구의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주민 간 관계 형성을 통한 고립 예방과 상호돌봄 기반을 넓혀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