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에서는 고대 제방 속 흙주머니인 토낭과 1970년대 울산 수해복구 현장에서 사용된 토낭에 대해서 알아본다.
가마니에 곡식 대신 흙을 채우면 거센 물살을 막아내는 든든한 방패인 ‘흙주머니’, 즉 토낭 혹은 초낭으로 거듭났다.
백제 비류왕 때 처음 축조된 김제 벽골제의 보축제방 하부에서는 7세기 통일신라 시기에 만들어진 토낭이 온전한 형태로 발굴됐다.
토낭은 1970년대 울산에서도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울산에 대규모 수해가 닥쳤을 당시, 마을 주민들은 가마니에 흙을 채워 약사천과 여천천, 화봉동과 서부동의 무너진 제방을 층층이 메우며 삶의 터전을 굳건히 지켜냈다.
울산박물관 관계자는 “토낭은 고대부터 이어진 치수의 지혜이자, 현대 울산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상징”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자연의 위기 앞에서도 흙을 담아 둑을 쌓으며 삶의 터전을 함께 지켜냈던 선조들과 울산 시민들의 연대 의식을 되새겨보는 뜻깊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