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 백운동원림 전통 원형 정원 고스란히 원주이씨 이담로 첫 조성 450여년간 신비로움 간직

    생산, 제다 모두 이뤄진 우리나라 차 문화사의 산실

    by 편집국
    2026-07-22 09:14:44




    강진 백운동원림 전통 원형 정원 고스란히 원주이씨 이담로 첫 조성 450여년간 신비로움 간직 (강진군 제공)



    [국회의정저널]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자락에 있는 백운동원림은 조선중기 처사 이담로가 들어와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이라 새기고 조영한 원림으로 자연과 인공이 적절히 배치된 구성이며 우리 전통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돼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란 뜻이다.

    정원을 조성했던 이담로가 남긴 백운동 유서기에는 '내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한갓 그윽한 경치 때문만이 아니다. 물줄기를 이끌어 술잔을 띄우는 뜻은 란정의 풍류를 본받기 위함이요, 바람결에 종소리를 듣는 뜻은 고산의 풍류를 본받기 위함이다. 한적하게 살며 심성을 함양하고 문묵으로 낙을 삼는 자 또한 이로 인해 도움이 되는 바 있을 것이다. 우물에는 연꽃을 심어 천연을 사랑하고 동산에는 매화를 심어 고결을 숭상하며 국화에서는 능상의 절개를 취하고 소나무에선 세한의 지조를 취한다. 물가엔 군자를 연상할 대나무가 있고 뜨락엔 교분을 의탁할 난초가 있으며 새장 속엔 달을 우짖는 학이 있고 시렁 위엔 바람에 우는 거문고가 있다. 이것이 바로 백운동의 생활이다'라고 썼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제자 초의 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백운동 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는데 이를 근거로 호남의 유서 깊은 전통별서의 모습을 보존 재현했다.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다녀갔으며 다른 어느 곳보다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정원이다.

    이 정원은 2018년 국가 지정 명승 115호로 지정됐다.

    백운동원림은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중 하나이다.

    계절마다 모습 달리하며 조화로운 변주 선봬 백운동원림은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가 1660년께 조성한 낙원이다.

    처사는 도덕과 학문이 뛰어나면서도 벼슬을 하지 않는 선비를 일컫는다.

    유불선 사상을 바탕으로 자연과 풍경을 사유하고 삶의 의미와 운치를 깃들어 조성했다.

    자연과 전통 문화가 어우러졌다.

    원림은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되나, 안팎으로 산다경, 운당원, 석림원, 다원, 유상곡수 등 개성 있는 경승들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간섭하거나 다투지 않고 빛과 어둠, 높고 낮음, 색과 향기, 고요와 소리가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며 조화로운 변주를 보여준다.

    백운동원림은 자이당과 취미선방, 백매오, 수소실, 유상곡수, 운당원, 정선대, 창하백, 정문인 백운유거, 석림원, 산다경으로 구성돼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감탄한 백운동 12경은 옥판상기, 유차성음, 백매암향, 풍리홍폭, 유상곡수, 장벽염주, 유감홍련이 있다.

    더불어 화계모란, 취미선방, 풍라보장, 정선대, 운당선운이 있다.

    백운동원림은 '백운삼연'으로 규정된다.

    천년 세월이 삼연인 자연, 인연, 명연을 생육하고 삭히고 묵히고 우려냈다.

    이른바 백운동원림의 세 가지 보배.

    우선, 자연이다.

    꾸미지 않은 원시 자연 속 수려한 풍광이 우선 눈에 띈다.

    국립공원 월출산과 강진의 테라스 월출 다원의 배꼽쯤에 백운동원림이 있다.

    하늘을 뚫고 솟은 웅장한 바위의 기이한 자태와 땅이 솟고 꺼져 수려해진 벼랑, 안갯속 신비로운 바람길을 따라 산수를 감상하다 보면 대자연의 기운에 사로잡혀 일상을 잊는다.

    정현종이 지난 2018년 백운동원림을 찾은 뒤 시를 지었다.

    제목은 '마음의 과잉을 어쩔 줄 모르겠네'. 누가 숨겨놓았는지 백운동 별서정원.

    필경 월출산이 숨겨놓았고 오래전부터 우리 마음이 숨겨놓았으며 하늘도 합심해서 비밀을 지키고 계시니 쉬 발설하기 어렵네.

    저 불멸의 숲의 요정들을 여기서 만나니 숲이야 계곡이야 꿈의 도가 내 마음 오래전부터 여기 있었네.

    우리 꿈 세상 이래 여기 깊이 있었네.

    꿈도 마음도 여기 참 많이도 붐벼 이 과잉을 어쩔 줄 모르겠네.

    두번째로 '인연'이다.

    학문, 예술, 유불선, 충절로 삶을 꽃피운 백운동 사람들의 행적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백운동원림은 원주 이씨 가문의 정원으로 조선시대 계유정난때 강릉부사였던 이염화가 수양대군에게 참화를 입자 호남으로 이거했고 후손 이남은 을묘왜변, 이억복은 함경도 절제사 때 순국했다.

    사도세자의 스승이었던 동강공 이의경이 은거한 곳으로 6·25전란으로 폐허가 되는 등 극심한 환란 속에서도 13대 450여 년간 지키고 보전해 온 가문의 유산이다.

    고려시대에는 고승들의 수선처였고 조선 중기 이후 호남의 대표 명원으로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조선 후기 명사들의 시서화가 창작된 문화의 산실이다.

    현대에도 정현종, 도종환, 이이남 등 시인과 화가들이 작품을 남기며 다양한 인연의 흔적이 이어지고 있다.

    다음은 '명연'이다.

    한국 전통차 명맥을 이어온 차 문화의 산실이다.

    초의선사, 다산 정약용, 백운동주 이시헌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 뿐만 아니라 차로 맺은 명연이 세대로 이어졌다.

    다산과 이시헌, 다산의 아들 정학연과 이시헌의 아들 이면까지 차로 맺은 가문 간의 우의가 돈독하다.

    다신이 백운동으로 보낸 편지글 가운데 일부다.

    '근년 들어 병으로 체증이 더욱 심해져서 잔약한 몸뚱이를 지탱하는 것은 떡차에 힘 입어서일세. 지난번 보낸 떡차는 거칠어 썩 좋지가 않더군. 모름지기 세 번 찌고 세 번 달려 곱게 빻아야 하네···'백운동원림에는 차 전문서이자 차 무역으로 부국강병을 주장한 동다기교와 다산의 삼증삼쇄차 제다법 기록이 남아 있고 후손들은 항명, 월산 작설차, 백운 옥판차 등을 만들어 전승해 오고 있다.

    백운동원림은 차의 생산, 제다, 명선택이 모두 이뤄지고 그 역사와 기록이 전승된 우리나라 차 문화사의 산실이다.

    강진원 강진군수는 “백운동원림은 월출산과 다산 정약용 선생, 초의선사, 원주 이씨 문중의 역사와 이야기, 차의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보기 드문 국가적 명승이자 강진이 숨겨놓은 보물 중의 보물”이며 “백운동원림에다 백운동전시관에 전시된 국보급, 보물급 유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선조들의 지혜와 일상에 감탄이 절로 날 것”이라고 말했다.

    원주이씨 문중 유물, 다산 등 시서화 작품 전시 강진 백운동전시관은 국가유산청과 강진군청이 백운동원림의 문화유산을 보전, 전승하고 국민에게 자연과 전통문화를 향유케 할 목적으로 지난 2024년 10월 완공, 준공식을 가졌다.

    백운동을 조성하고 450여 년간 유지 보존해 온 원주이씨 문중의 궤적과 유물, 백운동을 찾은 다산 정약용 등 묵객들의 시서화 작품, 백운동 4계,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다음은 백운동전시관의 주요 전시 작품들이다.

    우선 백운동 주인인 역대 동주들의 유묵들.

    백운동원림을 조성한 1대 이담로부터 현재 13대 이승현 동주까지 450여년간 지켜 보존해 온 기록물과 유물.

    두 번째로 사도세자 사부를 지낸 동강공 이의경의 초상화.

    조선시대 승려화가 색민이 그린 조선시대 초상화 걸작.

    세 번째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운동 제자 이시헌에게 보내온 차 제다법이 기록된 간찰 10여점.

    네 번째로 우리나라 최초 차 브랜드인 백운옥판차 기록과 이덕리의 동다기.

    다섯 번째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운동 12승경을 시로 짓고 초의선사가 백운동과 다산초당을 그린 시화첩인 백운첩.

    여섯 번째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용모를 묘사한 유일한 기록물.

    일곱 번째로 백운동원림 사계절을 담은 미디어 아트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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