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길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하동군, 옥종산불 대응 9일의 사투…단 한 명의 희생도 없었다

    by 편집국
    2025-03-31 10:30:58




    “불길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국회의정저널] 2025년 3월 22일 오후 2시 57분,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한 돌풍을 타고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까지 번졌다.

    불길은 9일간 이어지며 산림 피해 영향 구역만 약 700ha에 달했다.

    산불로부터 대피한 마을은 14곳, 대피 인원은 1,400명 이상에 달한다.

    전국 최대 딸기 주산지이자, 유교문화와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사찰 사찰이 밀집한 옥종면. 그 위기를 막아낸 건 다름 아닌 ‘사람들의 용기’였다.

    하승철 하동군수를 중심으로 공무원과 소방, 군·경, 진화대원, 자원봉사자, 그리고 군민들이 밤낮없이 현장을 지켰다.

    그 뜨거웠던 9일간의 대응과 기록,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를 전한다.

    하승철 하동군수는 산불이 발생한 첫날부터 단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에 있었다.

    새벽 5시 30분, 자택을 나서며 하루를 시작한 그는 차량 안에서 곧바로 주민 대피소 운영 상황부터 체크했다.

    이어 국도 59호선을 따라 옥종 위태리 등 산불 피해가 극심했던 지역을 매일 직접 돌며 피해 상황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매일 오전 7시, 경남도청에서 열리는 산불대책본부 상황판단회의에도 예외 없이 참석했다.

    통상 실무자가 참석하는 자리였지만, 하 군수는 직접 경남도청에 출석해 하동군의 심각한 위기 상황을 상세히 보고했고 헬기 투입과 장비 지원을 강력히 요청했다.

    도청 회의를 마친 후 다시 옥종면 피해 현장을 방문했고 오전 8시 30분경에는 하동군청 본부상황실로 복귀해 상황판단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에는 군청 각 부서뿐 아니라 하동소방서 하동경찰서 이장단까지 모두 참석했으며 마을별 대피 현황, 진화 진행 상황, 인력·장비 배치, 급식 체계 등 모든 대응 체계를 점검했다.

    특히 하 군수는 대피소 운영의 어려움을 하나하나 살피며 “군민 보호와 생명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매일 산불 지휘본부와 현장을 찾은 박완수 경남도지사와도 긴밀히 협의해 헬기 및 장비 추가 투입을 요청했고 서천호 국회의원과도 직접 통화하며 실시간 상황을 공유, 신속한 행정 지원을 이끌어냈다.

    산불 상황이 가장 위중했던 3월 25일 오후부터 26일 새벽 사이, 하동군의 대응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하승철 하동군수는 하루 평균 3~4회의 상황판단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상황을 면밀히 파악했고 밤 10시까지 현장을 순회하며 대응을 진두지휘했다.

    그의 하루는 회의에만 머물지 않았다.

    산불 피해 지역을 하루 3차례 이상 직접 방문해 이재민의 눈을 마주하며 위로를 전했고 현장에 투입된 자원봉사자들과 진화대원들에게도 감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전국에서 하동을 찾은 125개 방문 단체에 직접 브리핑을 진행해 산불 대응 및 복구 계획을 상세히 설명하고 기부금과 물품 배분의 투명성을 약속했다.

    매일 밤 12시를 넘겨서야 귀가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하 군수는 불길이 가장 위협적인 지점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처럼 현장에서 주민과 함께하며 끝까지 대응에 나선 것이 하동군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이 이번 산불을 극복해내는 결정적 배경이 됐다.

    이번 산불 대응에서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은 3월 25일 밤이었다.

    강풍을 타고 불길이 정개산을 넘어 옥종면 중심부로 번질 위기에 놓이면서 하동의 상징적인 문화유산과 주민 생명이 직접적인 위협에 처했다.

    특히 하동의 대표 전통사찰이자 고서 ‘화엄경소’등 문화유산을 보유한 사찰 청계사, 조선 중기의 유학자 하홍도의 위패를 모신 유교문화재 모한재, 그리고 안계마을 등 5개 마을이 불길의 바로 앞에 놓였다.

    현장은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불길은 시시각각으로 접근했고 돌풍 속에서도 모든 진화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됐다.

    소방차, 진화대, 공무원, 의용소방대는 밤새 450m에 이르는 3중 소화선을 구축하며 확산을 막았다.

    이른바 ‘마지막 방어선’ 이었다.

    25일 밤 00시 30분경, 모한재에는 소방범퍼차 3대와 소방관 10명, 청계사에는 범퍼차 2대, 소방관 6명, 의소대원 4명이 긴급 투입됐다.

    하동군청 진화대는 두 지역에 각각 2조진화대 11명과 살수차·순찰차를 투입했고 오전 4시에는 3조 진화대 11명이 추가로 배치됐다.

    당시 가장 결정적이었던 조치는 “퇴각 직전까지 이어진 살수”였다.

    모든 인력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물을 뿌리며 불길을 막아냈고 결국 산불은 청계사 10m 앞에서 멈춰섰다.

    마을과 문화유산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집중력은 위기를 기적으로 바꿔놓았다.

    무엇보다 ‘하동의 안동’ 이라 불리는 유교문화 중심지 모한재와, 지역의 정신적 지주인 청계사를 화마로부터 지켜냈다는 사실은 지역사회에 큰 위안과 자부심을 안겼다.

    수일간 이어진 진화 작업 속에서도 진화대, 공무원, 군·경 인력은 극심한 피로 속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현장을 사수했다.

    그런 가운데 지역 주민들과 각 기관들도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진화 활동에 나서며 현장에 큰 감동을 전했다.

    옥종면 남녀의용소방대와 딸기 수확을 잠시 멈춘 10여명의 주민들은 농약 살수차 3대를 동원해 산불 확산 저지에 힘을 보탰다.

    하동축협 역시 방역차 4대와 살수포 1대, 인력 20여명을 투입해 산불 연접 지역과 산림·주택의 경계 구간에 집중 살수를 이어갔다.

    이들은 불길 앞에서 ‘희망의 방화선’을 그리며 민·관이 함께하는 진화의 전선을 만들었다.

    또한 하동축협은 산불이 급속히 확산되던 시점, 축산 농가의 피해를 막기 위한 선제적 대응에도 나섰다.

    인근 농가에서 사육 중이던 소 100여 마리와 염소 100여 마리를 빈 축사로 신속히 대피시키며 동물 피해를 최소화했다.

    산불이 닿기 전 사전 이동 조치를 완료한 덕분에, 축산 분야에서도 별다른 피해 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동축협 강창우 상무는 “산불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자는 마음뿐이었다”며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주민들의 연대와 헌신은 실제 산불 확산을 막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동군은 2025년 3월 22일부터 30일까지, 산불 피해 주민을 위한 성금·성품 모금을 긴급히 진행했다.

    기부는 현장 물품 기부와 계좌이체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 명의의 특별 계좌를 개설해 성금 전액을 하동군 피해 복구에 사용 할 계획이다.

    2025년 3월 30일 오전 기준, 227개 단체와 개인이 총 5억원 상당의 구호 물품을 전달했으며 64건의 성금 모금이 이뤄져 총 1억 2,300만원이 모였다.

    특히 가수 손빈아씨와 공식 팬카페는 무려 1,800여만원을 후원해 큰 감동을 자아냈다.

    이외에도 전문건설협회 하동군운영위원회, 하동금오농협, 재부 하동향우회, 시장군수구청장협회의, 하동군 수의사회, 하동신문사, 목민토건, 국보싸이언스, 지리산 칠불사 등 지역과 연고를 둔 단체들이 온정을 보태며 ‘함께 버티는 힘’을 보여줬다.

    기부된 물품은 대피소 및 현장에 즉시 전달됐으며 성금은 옥종면을 중심으로 한 산불 피해 주민들에게 집중적으로 사용될 계획이다.

    또한 산불 발생 직후부터 하동군은 임시거주시설 11곳을 즉시 가동해 733명의 이재민을 수용했다.

    옥천관, 옥종초·중·고 실내테니스장, 행복나눔센터 등 공공시설을 총동원했으며 고령자와 어린이 가정은 옥종통합돌봄센터와 국공립어린이집에 우선 배치되어 보다 세심한 보호가 이뤄졌다.

    의료 상담, 심리 안정, 감염병 예방 관리까지, 그곳은 단순한 ‘임시 거처’ 가 아니라 ‘안전한 쉼터’였다.

    총 14개 마을, 1,416명의 대피자는 대피소뿐 아니라 친인척 집 등을 통해 추가 안전공간까지 확보됐다.

    재해구호세트 876개, 모포 등 2,679점, 텐트 297동, 간소복 960벌 등 각종 긴급 물자도 빠짐없이 지원됐다.

    무엇보다 값졌던 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진화 작업 못지않게 중요했던 ‘대피 주민 통제’ 덕분이었다.

    경찰과 공무원, 마을 이장들이 14개 마을에 교대로 상주하며 주민들이 위험 지역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24시간 철저히 지켜냈다.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는 그 집념이 사람의 생명을 지켰다.

    또한 새마을운동하동군지회, 하동군자원봉사협의회, 하동군여성단체협의회를 비롯한 10개 봉사단체는 산불 대응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구호 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피해 주민들을 도왔다.

    매일 200명 이상, 66개 단체 총 1,86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대피소를 찾아 이재민을 응대하고 환경을 정비하고 따뜻한 한 끼를 손수 챙겼다.

    대한적십자사 밥차, 거제시 자원봉사자회 급식차, 지역 식당의 후원 등을 통해 총 27,700여명 식사를 제공하며 이재민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눴다.

    모두가 제자리를 지켰기에, 모두가 함께 견딜 수 있었다.

    하동군은 이번 산불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제27회 화개장터 벚꽃축제’를 전면 취소했다.

    하승철 하동군수는 “모든 행정력을 산불 대응에 집중해야 한다”며 행사 축소 운영조차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신 그는 “하동의 진짜 봄은, 우리가 함께 만든 이 연대와 희망 속에 있다”며 군민과 관계자들의 헌신과 협력을 강조했다.

    28일 거센 불길의 주불이 잡혔고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간 잔불 정리가 마무리되며 비로소 불은 완전히 꺼졌다.

    현재는 산림 당국과 진화대 등이 산불이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뒷불 감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민 대피 명령도 모두 해제됐다.

    임시 대피시설에 머물던 이재민들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마련됐던 임시 쉼터는 이제, 다시 살아갈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하 군수는 “군민 모두가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복구 단계에서도 행정·민간·기관이 함께 손을 맞잡고 나아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전해진 기부와 응원의 마음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다시 하동의 산은 푸르러질 것이고 딸기는 자라나며 청계사에는 고요한 종소리가 울릴 것”이라는 말로 군민의 회복 의지를 전했다.

    한편 이번 산불 진화를 위해 총 5,729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구체적으로는 △공무원 3,015명 △진화대 337명 △소방서 780명 △의용소방대 590명 △경찰 579명 △군인 425명 △기타 인력 3명이 동원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장비도 총 544대가 동원되며 대형 산불 진화에 힘을 보탰다.

    이 중 △진화헬기 70대 △산불진화차 68대 △지휘차 8대 △소방차 299대 △경찰차 67대 △기타 장비 32대가 동원돼, 험지 진입과 고지대 화점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동군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한 인명피해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재산 피해는 두방재 관리사 2동이 전소되고 수령 900년에 달하는 두방은행나무가 불에 타 소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행히 이외의 추가 시설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다만 산불로 인한 산림 영향 구역은 약 700ha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피해 면적은 향후 정밀 조사를 거쳐 공식 집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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